4·3 자료

  1. 홈
  2. 4·3 자료
  3. 문서

일반문서1950-07-26

제주도(1950. 7. 26)

  • 기록물 명제주도(1950. 7. 26)
  • 수집처정보없음
  • 생산자주한미대사관
  • 기록물 유형문서/도서류 - 일반문서
  • 형태 (전자/비전자) 비전자-jpg
  • 언어한국어
  • 식별번호B553380-FOOR-03847

내용

제주도 제목: 제주도 작성: 미 국무부 극동아시아 담당국 (중략) 제주도 사람들은 매우 지방색이 강하며, 최근에는 지역 관리들에게 적대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본토나 혹은 북한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중략) 1946년부터 1949년 봄까지 제주도는 공산게릴라 활동의 주요 근거지였다. 정부군과 게릴라들간의 무장전투에서 400개의 마을 중 104개를 제외한 모든 마을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관공서와 학교가 불탔고, 최소한 전체인구 25만 5,000명 중 최소한 십분의 일 정도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제주읍으로 피난하였으며, 주민의 대다수가 곤궁에 처하여 구호의 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군의 남한내 게릴라지역에 대한 세 차례에 걸친 조직적인 토벌작전 중 첫 번째 작전이 시행된 1949년 봄에 게릴라 활동은 사실상 무너졌다. 그 이후에는 극소수의 게릴라 활동만이 있었다. 1950년 초 대한민국정부는 예산을 편성하여 파괴된 제주도에 대한 재건과 구호정책을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1949년 동안 경제적인 상황이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판단되나, 정부의 재건?구호정책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이전까지 시행되지 않았다. 6?25 이후에 공산게릴라 활동이 제주도에 심각한 정도로 진행되었다는 평양라디오방송의 주장에 대한 긍정이나 혹은 부정이 불가능하다.
  • 유형문서/도서류-일반문서
  • 출처제주 4·3 위원회